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아멘,

 

 

구약을 대표하는 중요한 지침이 십계명이라면

신약을 대표하는 중요한 지침은 산상수훈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의 저자가 구태여 1절에서 무리제자를 나눈 것은

그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무리그들은 유익을 위해 예수를 좇은 자들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몸과 마음이 가난하여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자그들은 무리사이에 있었지만

그들이 예수를 좇는 이유는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희생과 포기를 기꺼이 감수하며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을 들었던 대상은 무리가 아닌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로 나아온 제자들을 보시며

첫 번째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말씀을 얼핏보면 복은 심령이 가난해져야 받을 수 있다는

조건적인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문을 들여다보면 이 말씀은 조건적인 말씀이 아닌

선언적인 말씀입니다.

 

 

, 마음이 가난해야지 복이 있다! 라는 내용이 아니라

먼저, 너희는 좋겠다! 복이있다! 너희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라는 선언적인 뜻입니다.[μκριος(마카리오스)]

그러니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이미 그들의 심령이 가난해진 상태의 사람들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음이 파산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 몸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자신에게 소망없는 것을 압니다.

또 시도해도 넘어질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들은 중요한 태도 하나를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아이 제가 뭘요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와 같은 동양의 미덕따위가 아닙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구하는 태도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복을 누립니다.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은 죽어서만 가는 공간적인 개념의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영역이 천국입니다.

나의 힘으로 노력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는 것을

바라보고 감격하고 감사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모자람을 압니다.

주제를 파악하여 하나님께 기대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누려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집니다.

 

 

팔복의 첫 번째 말씀을 통해

나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고 하지만

나의 마음은 가난한가?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나? 라는 질문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사역도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 것인데

나의 경험으로  관계로 성품으로 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부요한 것입니다.

이곳 저곳 비빌언덕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몸과 마음이 가난해지길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통치가 내 삶에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가정과 장래에 나의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있길 간절히 사모합니다.